'자치주성립 경축의 노래' 비(碑) 세운다
우리들에게는 듣기만해도 어깨춤이 나오면서 흥겹게 한곡조 불러넘기고싶은 흥겨운 노래가락이 있다. 연변의 조선족은 물론 전국의 조선족들까지 모두 날따라 번영부강해지는 이 나라의 떳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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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주 성립 경축의 노래”비 관광명물로 우뚝
800여명 군중의 마음을 모아 건설한 “자치주 성립 경축의 노래”가 기념비로 땅을 차고 우뚝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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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윤선생과 "자치주성립경축의 노래비"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3-02-06 16:03:42 ] 클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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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 60돐을 맞으면서 2012년 9.3전야에 연길시진달래 광장에는《자치주성립경축의 노래》비가 땅을 차고 우뚝 세워졌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창립과 함께 만들어지고 널리 애창되여온《자치주성립 경축의 노래》가 자치주창립60돐을 맞는 력사적인 시기에 연변조선족이 자치권리를 행사하는 연변땅에 노래비로 우뚝 세워지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깃들어있다. 특히 그동안 이 노래비의 설립자금마련을 위해 병약한 로구를 이끌면서 밤낮이 따로없이 동분서주한 노래비설립발기자의 한사람인 한석윤선생을 취재중 항상 지켜보면서 한석윤선생의 진한 애족애향심과 인격적인 매력에 숭경의 마음을 금할수 없다.
기자가 한석윤선생을 처음 만난것은 지난해 4월의 일이였다.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 회장 한석윤 등 연변의 여러 조선족사회단체의 유지인사들이 자치주창립 60돐을 맞으면서 뜻을 모으고 연길시 진달래광장에《자치주성립 경축의 노래》기념비를 세우기 위해 동분서주하고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석윤회장을 취재했다.
기자의 취재를 접수할때 한석윤선생은《자치주성립 경축의 노래》창작배경에 대해 더듬으면서 조선족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창건과 함께 토지를 분배받고 공민으로까지 인정받았는데 조선민족자치구의 성립과 함께 소수민족으로서 자치권리까지 향수하게 되여 이 나라의 주인된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했다고 강조, 《자치주성립 경축의 노래》에 담긴 연변조선족의 자치권리와 민족단결 그리고 연변건설에 대한 총체적인 의미는 과거, 현재, 미래를 물론하고 시대적이고 력사적인 심원한 의의를 가진다고 말했다. 특히 한석윤선생은《자치주성립 경축의 노래》는 당의 민족자치구역정책과 민족자치권리를 행사하는 우리의 기쁨을 목청껏 구가한 노래로 1952년 9월3일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성립되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60성상 우리 민족 구성원들이 마음으로 불러온 노래라고 강조했다.
이날 한석윤선생은 기자에게 연변조선족자치주성립 60주년을 맞으면서 우리민족 구성원들의 이런 간절한 념원을 담아 연길시 진달래광장에 《자치주성립 경축의 노래》비를 세우고 그것을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영구 기념물로 만들어보자는데 뜻을 같이하고 여러 사회단체와 공동으로 노래비 건립에 착수하게 되였다고 밝혔다. 취재중 한석윤선생은《자치주성립 경축의 노래》비는 우리 민족의 절절한 마음을 담아 세우는 영구성기념물이기에 사회적인 지원으로 세우고자 계획하고있으며 이와 함께 정부적인 지원이 아닌 조선족 사회단체, 기업가, 지성인들이 앞다투어 동참하면서 의미가 깊은 노래비설립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때까지《자치주성립 경축의 노래》비 설립에 모아진 돈은 겨우 10만여원밖에 안되였다. 당초 예산했던 노래비설립자금 60만원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돈이였다. 한석윤회장이 제일 먼저 1만원을 후원계좌에 입금시켰다. 그 돈은 한석윤회장이 70세를 기념해 책을 묶어 출판하려던 돈인데 한국에서 일하고있는 딸이 해마다 용돈으로 쓰라고 보내주는 돈을 조금씩 여러해에 거쳐 모아두었던 돈이였다.《이번 활동의 발기자로서 자기부터 돈을 내지 않고 어떻게 남에게 건설자금을 지원하라고 동원하겠느냐》당시 한석윤회장은《이 말만은 절대로 신문에 내면 안된다》고 정색해서 기자에게 신신당부했다.
그때 한석윤회장을 비롯한 여러 지성인들은《자치주성립 경축의 노래》비 설립 자금준비때문에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한석윤회장은 모금의 한계를 느꼈다. 다년간 중국조선족소년보사 사장 겸 주필 등 중임을 맡고 여러가지 청소년문화행사들을 꾸준히 이어왔고 공원에 시비세우기 등 중국조선족문화사업발전에도 큰 기여를 해온 한석윤선생과 선생이 진행하고있는 문화사업들을 문화권에서는 적극 지지하고 믿어주지만 기업인들과 경제인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지, 성원은 잘 이루어지지 못하고있어 자금조달이 어려웠던것이다. 심지어 내놓고 한석윤선생에게 그런 일에 쓸 돈은 있어도 못주겠다고 랭대하는 기업인까지 있었다. 심지어 노래비설립에 정치적인 색채까지 부여하면서 엉뚱한 반대의견을 제출하고 인터넷상으로 노래비발기자인 한석윤선생의 인격마저 비하하는 한심한 일까지 있었다.
허다한 자금압력과 류언비어속에서도 한석윤선생은 노래비설립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만큼 한석윤선생은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중국조선족문화의 중심지이고 마음의 고향이며 민족공동체의 구심점이라고 생각했다.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우리 민족의 요람으로 가꿔가고 지켜가고 빛내가는것은 우리 조선족들의 간절한 념원이기때문에 갈수록 퇴색되여가는 자치주이미지의 새로운 정립과 애족, 애향심의 고양을 위해서는 노래비설립의 의의와 필요성을 더욱더 절박하게 느꼈다.
2012년4월11일, 노래비설립모금이 난항을 겪고있다는 소식이 제일 처음으로 인터넷 길림신문을 통해 발표된후 많은 리퇴직인원들과 재직일군, 대중소학교 학생들과 기업인, 지성인들이 노래비설립 후원행렬에 적극 참여했다. 인터넷길림신문에 노래비설립소식이 공개된 이튿날인 4월12일 아침 40대의 한 기업인이 첫사람으로 한석윤회장을 직접 찾아와 《연변은 우리 민족의 자치권리를 행사하는 유서깊은 곳입니다. 저는 연변에서 태여나서 <자치주성립경축의 노래>를 부르며 자랐습니다. 비록 큰 돈은 못 내지만 이처럼 뜻깊은 일에 마음을 보태고 싶습니다》라고 하면서 5만원의 후원금을 선뜻이 내놓았다. 거금을 들고온 기업인을 보면서 한석윤선생은 우리 민족은 희망이 있으며 우리민족의 문화사업도 희망이 있다고 굳게 믿었다.
공원소학교 학생들에게 《자치주성립 경축의 노래》의미를 말해주고있는 한석윤선생
그때 노래비설립모금때문에 한석윤회장은 병약한 몸으로 직접 여러 학교와 기업, 단체들에 찾아가 노래비설립의 목적과 의의를 입이 닳도록 설명하면서 대중적인 노래비설립참여를 호소했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많이 힘들었지만 민간적인 후원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지가 노래비설립에 큰힘이 되였다고 한석윤회장은 지금도 감개무량해서 말하군 한다.
사회 각계에서 보내온 노래비 설립 모금을 접수하면서 한석윤회장은 감동적인 느낌도 많이 받았다고 터놓았다. 특히 연길시의 박록순, 장춘시의 김신숙, 림귀인 등 퇴직한 로인들이 얼마 안되는 퇴직금에도 불구하고 선뜻이 고향 연변의 노래비 설립에 아껴쓰면서 모은 돈을 보내온 감동적인 사실과 최상철 등 재직에서 제한된 로임으로 살아가는 월급족들이 선뜻이 후원금을 지원한 일, 그리고 연길시 제13중학교 1학년 1반의 청소년학생들을 비롯한 중소학교 학생들이 한푼두푼 모아둔 소비돈을 의연하는것을 보고는 향후 연변을 지키고 건설해나감과 동시에 우리 민족의 전통을 계승발양해 나갈 우리의 민족지성인들과 새 세대들에게 노래비 설립목적을 인식시킨것 같아서 다행스러웠고 가슴이 뭉클해나더라고 감명깊게 이야기했다.
지난해 중국정법대학에 입학한 한 녀학생은 3년동안 모아왔던 동전 300여원을 노래설립자금으로 지원했는데 녀학생의 이름은 리혜경, 한석윤선생의 외손녀였다. 혜경이는 후원금과 함께 《할아버지 모습에 감동되여 이 돈 보냅니다》는 편지를 썼는데 민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바치시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너무나 안일을 추구하고 자기 자신에만 몰입해있는 자기 세대를 반성하게 된다면서 지난 60년은 할아버지 세대가 지고왔지만 앞으로의 60년은 우리 세대가 메고가면서 민족을 지켜가는 당당한 중화인으로, 중화를 빛내가는 자랑찬 세계인으로 자라겠다고 당찬 믿음을 주었다. 편지에서 혜경이는 할아버지에게 한가지 간절한 부탁이 있다고 하면서 의사선생님의 말씀대로 병원에 입원하시여 제발 당신의 건강을 돌보시라고 권고, 그래야 민족과 나라를 위해 일도 더 하실수 있고 손녀를 참다운 사람이 될수 있도록 이끌어주실수 있지않겠는가고 가슴 뭉클한 편지를 남겼다.
노래비설립후원금 모으기행렬에 허다한 사람들이 발벗고 나섰다
지난해 4월부터 사회적인 노래비설립모금이 시작된후 연길, 장춘, 연태, 청도, 북경의 기업가 지성인들도 륙속 노래비설립 후원금 모으기 행렬에 동참하였으며 노래비설립은 조선족사회의 이슈로 되였다.
그러던 지난해 6월말, 제2단계 노래비설립자금모금이 민간적인 모금에만 의지하다보니 계획된 설립자금에는 턱없이 못미쳤고 당장 정상적인 시공에 필요한 자금조달마저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였다. 마침 그때 청도에서 조선족기업가들의 모임이 있어 한석윤회장은 그곳에 가서 조선족기업가들에게서 노래비설립자금 후원을 받으려고 계획했다. 기업인들과는 전혀 안면이 없는터라 가는 걸음에 북경에 들려 당시 중화전국공상련에서 사업하고있는 전철수상무부주석에게 위탁하여 조선족기업인들의 지지를 받기로 계획했다. 그번 걸음에 지속적인 후원자금보도를 위해 기자도 한석윤선생과 함께 동행하게 되였다.
북경에서 한석윤회장은 가격이 가장 싼 일반려관에 투숙하였으며 매끼 식사도 15원을 넘지 않을 간단하고 소박한 식사를 했다. 노래비설립자금이 어려운때 민간적으로 한푼두푼 모은 후원금을 생각하면 항상 돈쓰기가 조심스러워지고 아낄수밖에 없다고 말하면서《기자량반》에게 좋은 접대를 못해준다면서 미안해하군 했다. 중공중앙 통전부 부부장이며 전국공상련합회 상무부주석인 전철수는 당의 민족정책에 감사드리고 자치주를 더욱 부강하게 건설해갈 뜻을 다지기 위해 민간의 힘으로 노래비를 세운다는 소식을 듣고 뜨거운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었다. 전철수동지를 통하여 노래비설립에 관한 사정을 알게 된 산동성의 한 기업인은 노래비설립에 50만원을 보내주었다.
노래비 설립에 뜨거운 관심과 지지를 보내준 전철수동지와 함께
길림공상학원 당위서기 신봉철동지도 길림신문발전연구회 이름으로 10만원을 보내주어 노래비건립에 든든한 자금기초를 마련해주었다. 신봉철동지는 한석윤회장이 70세가 되는 로구를 이끌고 건강이 좋지않은 몸임에도 불구하고 다년간 조선족 청소년문화사업에 사심없이 불태우고있는 사실을 높이 평가했다. 노래비설립에는 연변과 길림성은 물론 료녕성, 흑룡강성, 산동성, 북경시 등 외성시 유지인사들도 적극 설립자금을 후원했는데 근600여명이 노래비설립후원에 참여했으며 도합 88만 1530원70전의 후원금이 모아졌다.
지난해 9.3명절을 즈음하여 펼쳐진 노래비제막식 축사에서 한석윤선생은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중국조선족문화의 중심지이고 마음의 고향이며 민족공동체의 구심점》이라고 지적,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우리 민족의 요람으로 가꿔가고 지켜가고 빛내가는것은 중국에 살고있는 모든 조선족들의 간절한 념원이며 앞으로도도 우리 다같이 <자치주성립 경축의 노래>를 우렁차게 부르며 연변을 더욱 아름답고 부강하게 건설해가면서 새로운 60년을 향해 나가자》고 격정에 넘치는 제의를 하였다.노래비가 제막된후 있은 노래비설립 총화모임에서 한석윤선생은 그동안 노래비 설립시공비 60만원을 포함해 기타 경비사용 내역을 상세히 공개하면서 총후원금에서 아직 24만3441원의 여액이 남았다고 밝혔으며 모든 후원금사용의 투명성을 깨끗하게 보여주었다.
이날 한석윤선생은 노래비설립은 자라나는 우리의 청소년후대들 마음속에 자치주와 민족문화를 지키고 가꿔나가게 하려는데 취지를 두었기때문에 향후 남은 후원금을 청소년들이 노래비를 둘러싸고 다양한 활동과 행사들을 지속적으로 조직하는데 유용하게 쓰고싶다고 밝혔다.《연변조선족자치창립 60돐을 맞으면서 사회 각계의 따뜻한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 지지로 세워진 <자치주성립경축의 노래>비가 단순한 기념비적 의미를 떠나 이젠 더욱 많은 사람들이 민족자치의 의미와 발전을 찾고 신들메를 조일수있는 마음의 기념비로 승화되였으면 좋겠다》 한석윤선생의 말이다. 이는 한석윤선생은 물론 200만 중국조선족들의 《자치주성립경축의 노래》비에 대한 바램이기도 하다.